저자의 말
인간의 믿음에 대한 과학적 성찰
이 책을 쓴 이유는 (뇌가 창조해낸) 종교적 믿음과, 종교가 만들어낸 광대하고도 오래된 사회 시스템 간에 당혹스러울 만큼 뚜렷한 갭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인간 행동 측면에서도 풀어야 할 숙제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려고 하면 대개 한쪽에선 반종교적인 사람들의 적대감으로 인해, 또 한쪽에선 신앙은 회의와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자기확신으로 인해 제대로 된 논의를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와 종교가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종교를 이론적으로 검토할 수 없게 만들었고, 종교의 실용적 결과만이 우리의 과학적 초점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경우 정부 자체가 종교적 믿음을 표방하고 있고, 그것이 암묵적으로 선출직 공무원의 필수 조건이 되어버린 나라다. 기실, 신앙의 불길이 세계 모든 강대국 정부를 에워싸고 있다.
사람들에겐 인간적인 욕구, 슬픔, 실패, 트라우마 등이 넘쳐나지만, 수많은 공동체 안에서는 신앙에 휩싸인 열정, 그리고 종종은한 신앙체계의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려는 군사적인 열정이 존재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머릿속에 든 신념과 목에 건 부적 때문에 죽어간다.
예일대 출판부는 매우 확신에 차고 분노한 광신도가 편집자를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종교서적의 출판을 거절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종교 관련 서적이다. 순종적이고 준법적인 공동체가 누리는 평온한 종교적 위안은 남의 종교보다 자기 종교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무시무시한 폭력과 공존하고 있다.
집단의 중요성을 추구하는 국제적인 움직임과 국제정치의 소음 속에서, 종교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중요한 문제지만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한때 종교는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던 조용한 중심이었다. 따라서 종교에 대해 남아 있는 경외 때문에 그 이면에 어떤 충동이나 욕구, 교활함이 있는지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다. 이와 함께 인간의 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로 머물러 있다.
-> 역자의 말
저자들은 "신이 인간 뇌의 창조물이라면 신의 뇌는 인간의 뇌"라는 창조적인 주장으로 이 책을 전개하고 있다. '신'과 '뇌'는 이 책의 중심 테마다. 그리고 뇌과학을 기초로 한 치밀한 과학적 논증이 뒤따르고 있다.
신은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세계에 빛과 그림자를 드리운다. 난무하는 교회 십자가들 사이에서,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의 신앙 속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휴일 만찬에,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갈들 사이에서 종교는 하늘나라이기도 하지만 전쟁터가 된 경우도 많았다.
혼란스러운 믿음의 시대에 이 책은 신에 대한 믿음을 작동시키는 뇌를 들여다봄으로써 인간 믿음의 실체를 규명하고 있다. 즉, 신의 뇌(즉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는 종교라는 유구한 문화 현상에 과학적 뇌수술을 감행해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선악을 구분하거나 종교를 비판하거나 과학의 우월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인간의 뇌 속에 그토록 오래도록 자리 잡은 믿음, 그 종교의 생물학적 기원을 (거기까지만) 추적해보자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는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이 만만치 않다. 이는 '생명의 기원' 논쟁으로 더 격화되어 왔다. 198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창조론(그리고 지적 설계론)과 진화론의 대립은 결국 법정까지 가는 다툼으로 이어졌고, 아직도 그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이는 미국 공립학교의 과학 교과서에 진화론을 내몰고 지적 설계론을 채택해야 한다는 기독교도들의 광범위한 움직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대립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창조론은 대체로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논리로, '신'이 우주와 생명을 창조했다는 것이고, 지적 설계론은 신을 지칭하지는 않으면서 다만 '어떤' 지적 설계자가 우주와 생명을 설계했다고 주장한다. 지적 설계론은 신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부 창조론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은 생명의 복잡성, 즉 존재의 이유와 생명의 기원은 결코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면서 신 혹은 위대한 지적 존재라는 초월적 존재를 가정한다. 반면, 진화론은 생명은 그 자체로 진행성을 가지고 자연선택에 의해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계속 진화해왔다는, 현대 과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대표 이론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유신론을 비판하는 논리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논의로 귀결되는데, 이는 크게 세 가지 시각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종교가 인간 집단이나 개인의 생존, 번식에 순기능을 한 결과 선택되어 진화했다는 시각이다
둘째, 종교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발전시킨 인지 능력의 부산물이라는 시각이다. 셋째, 언어나 반복된 행동에 의해 하나의 정신에서 다른 정신으로 (예컨대, 부모에서 자식에게) 전달되는 문화정보로서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중 진화론에 기초한 열렬한 무신로자 리처드 도킨스는 서구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유신론 대 무신론 논쟁을 촉발시킨 [만들어진 신]에서 과학적, 합리적 이성을 무기로 유신론을 비판하면서 무신론을 열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신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 없다'고 확신하는 도킨스의 논리에 대해서는, 반대로 '신이 없다'고 확증하기 힘들기 때문에 신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박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도킨스가 지원한 런던의 버스 광고 "'아마도' 신은 없는 것 같으니 근심을 멈추고 삶을 즐겨라"라는 슬로건을 보며 어떤 유신론자들은 도킨스 같은 무신론자들도 신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신론과 무신론의 논쟁, 과학과 종교의 논쟁은 철학과 과학이 신학에서 분리된 이후 끊임없이 전개된 인류의 거대한 지적 논쟁의 본류를 형성하고 있다. 수천 년에 걸친 논쟁 속에서 믿는 자들은 불확실하고 불합리하므로 믿는다고 했고, 믿지 않는 자들은 알 수 없고 불합리하므로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과학과 종교 논쟁은 이 시대 최고의 과학적 지식, 치밀한 철학적 논리, 뜨거운 열정, 그리고 차가운 머리가 얽히고 부딪히는 인류 지성사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며, 인류가 절멸하거나 아니며 누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진리가 밝혀져야만 끝날 치열하고 첨예한 논쟁이다.
종교는 지적 논쟁의 대상만은 아니다. 종교는 오랜 세월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살아 있는 힘이다. 크리스마스 같은 특정 종교의 성일은 신앙인 뿐만 아니라 비신앙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많은 신앙인들이 신의 뜻에 따라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우며 사랑과 인류애를 실천하고 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슈바이처 박사, 미얀마의 승려들, 그리고 수많은 종교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은 신앙의 힘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인류에 봉사하고 있다. 그래서 인류사회는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는 종교로 인해 수많은 혼란과 폭력을 경험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종교 간의 전쟁, 같은 종교 내의 종파 분쟁, 교리 논쟁, 자살폭탄테러, 종교 차이로 인한 개인 간의 소소한 갈등, 그리고 종교 때문에 개인적인 욕망을 억눌러야 하는 내적 갈등. 이 모든 것이 평화와 사랑을 말하는 종교로 인해 발생했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세로토닌의 뇌 작동 기제를 규명한 신경과학자 마이클 맥과이어와 인류학자 라이오넬 타이거는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 뇌에서 발생하는 생물학적 기적, 즉 인류의 가장 오랜 유산인 종교를 해부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분석하고 있다고 해서 이들이 정확히 무신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다만 신앙과 종교가 뇌, 나아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과학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
뇌는 스스로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스스로 그 의문에 답하려 하는 매우 독특한 성격을 가진 기관이다. 뇌는 불편함을 느끼면 스스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작동한다. 만약 그 불편함을 오랫동안 해소하지 못하면, 뇌의 주인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마법사의 저주를 받아 호주 원주민이 스트레스와 걱정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이른바 '부두 데스'가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뇌는 호기심이 많고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고양이와 같다.
저자들에 의하면, 종교는 이런 독특한 성격을 가진 뇌를 위해준다. 종교는 뇌가 정말 궁금해하는 존재의 원리와 이유 혹은 사후세계에 대해 설명해주고, 불편함을 해소해주며, 만족감마저 준다. 미래 혹은 내세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삶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휴일, 휴가, 운동, 잠, 오락, 마약, 알코올 같은 것들에 의존하지만 일시적일 뿐, 이때 종교가 손짓한다. 그리고 말한다. 내세의 삶이 있으니 의심을 풀고 믿음으로써 평화를 얻고 구원을 받으라고 한다. 종교는 믿음을 분비한다. 종교활동을 하는 동안, 사람들의 뇌는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샹그릴라를 경험하는 듯한 초월적인 느낌을 받는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의 기능이 아닌가? 어쩌면 종교의 진정한 구원이란 초월적인 것이라기보다 생물학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종교는 구원을 제공한다.
우리의 종교적 열정과 믿음에 '뇌'가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새로운 발견이다.
목차
1. 뇌과학이 신의 수수께끼를 푼다.
2. 뇌와 종교
3. 우리 삶에 스며든 종교
4. 종교와 섹스
5. 종교, 왜 과학을 부정할까?
6. 종교는 뇌의 발명품
7. 스트레스, 뇌, 그리고 종교
8. 우리가 교회나 절에 가는 이유
9. 신은 어떻게 뇌를 만족시키는가?
10. 나의 뇌는 스트레스에 얼마나 견딜까?
11. 종교, 미움과 다툼 없는 논의를 위하여
천국은 없다. 사후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동화일 뿐이다. 사람들은 열망하지만 결국은 성취 불가능한 윤리적 질서나 생활 방식의 근거로서 신을 찾는다. _ 스티븐 호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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