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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ang 독서노트] 의학의 역사

독서노트

by C.Sang 2020. 11. 2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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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의학의 역사는 거대한 인류의 역사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학은 인간의 사상이 변할 때마다 함께 변했으며 전쟁이 일어나거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벌어질 때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시대나 르네상스시대의 의사는 시대를 이끌며 믿음을 나누거나, 반대로 시대의 믿음에 저항하기도 했다. 또한 권력자를 돕거나, 반대로 권력자에게 반항하기도 했다.
의학이 걸어온 역사를 보면 의학이 추구하던 최고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목표는 바로 '의학이 진정한 과학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원시시대에 인간의 본능에서 탄생한 의학은 당시 세계관을 반영하는 주술로부터 발전했다. 주술적인 치유행위에서 시작된 의술은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 이후 과학적인 의술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비웃음을 견뎌야 할 때도 많았고, 수 세기 동안 연금술이나 종교 교리, 미신 같은 강력한 신화와 맞부딪혀야 했다.
의학은 이러한 부침을 거쳐 과학 속에 어렵사리 자리 잡았지만 독립적인 과학의 한 분야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실무를 담당하는 의사보다 연구실에서 이론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자들에게 노벨의학상이 주어지며, 기초 생물학 지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환자를 수학 방정식의 변수처럼 단순하게 다룰 수는 없다. 환자가 예상치 못한 요구를 할 때도 있고, 치료 효과를 확신할 수도 없으며, 환자마다 성격과 표현 방식도 다르다. 따라서 단순히 '근거 중심의 의학'에만 의존하지 않고 환자가 표현하든 하지 않든, 설령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해도 이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의사가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인류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문제들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의학과 의사들의 이야기 또한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의학의 역사는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우습기도 하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 학자, 야심가, 사기꾼, 성인, 고지식한 사람들이 유쾌하게 얽히고설킨 한 편의 인간 희극과도 같다. 의학의 역사와 관계된 이 다양한 이야기는 진지하기도 하고, 동시에 재미있기 때문에 글과 그림으로 유쾌하게 구성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야 할지 갈팡질팡할 때도 있었고 책을 쓰다가 포기하게 될까 불안하기도 했지만, 작가로서 의학의 역사라는 기다란 실타래를 다양한 이야기로 엮을 수 있어 다행이다.

_ 장 노엘 파비아니


제 1장

원시시대에서 고대시대까지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났을 때부터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병을 고쳐왔을까? 환경에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주변을 관찰하며 수많은 치료 방법을 알아냈다.
수렵채집을 하던 유목민들은 구석기시대부터 이미 약초를 사용하고 뼈가 부러진 곳을 치료했다. 주술사는 마법을 부리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신비한 비술을 사용해 치료해주는 의사이기도 했다.
신석기시대에는 농업과 목축이 발달해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았다. 이렇게 해서 사회와 종교가 생겨났으며, 제사장들은 자연스럽게 질병 치료에 필요한 지식과 힘을 신에게 물려받아 사용하는 중재자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부터 전염병이 생겼다. 전염병이 퍼지자 사람들은 신이 분노했다고 생각했다.



P.15

고대 중국 의학은 종교가 아닌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중국 의학자는 사제가 아닌 철학가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전통 치료법과 달리 중국 전통 치료법은 오늘날 중국뿐 아니라 서구권에서도 사용된다.


히포크라테스는 과학적으로 질병을 치료했으며, 질병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관찰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120세까지 살았다.
1. 해를 끼치지 않는다.
2. 악행은 선행으로 치유한다.
3. 절제하며 산다
4. 무슨 일에나 때가 있다.



제 2장 중세시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화재로 그동안 쌓아온 지식이 일순간 사라졌다. 로마제국이 몰락하면서 발생한 사회 혼란과 곧이어 일어난 이슬람 세력의 침입도 문화를 쇠퇴시킨 원인이었다. 고대의 자료들이 없어지거나 흩어지면서 중세 초기 학식 있는 성직자들조차 그리스의 위대한 의학 연구 자료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한편, 동방의 페르시아에서는 네스토리우스교도 의사들 덕분에 치료 교육의 전통이 다음 세대에 전해질 수 있었다. 무함마드의 교리가 나타나고 아랍의 활발한 정복전쟁이 진행되면서 페르시아의 문화와 의학은 계속 뻗어나갔다. 제국 건설과 종교 및 언어 전파 덕분에 페르시아 의학은 중동과 지중해 남부 그리고 스페인에 퍼져 오랫동안 발전했다.
의학에서도 후세에까지 영향을 끼친 선구자 두 명이 영웅처럼 나타났는데, 그 중 한 명이 학문의 왕으로 통하던 이븐 시나다. 이븐 시나는 아랍 세계뿐만 아니라 훗날 르레상스 시대 기독교 의사들에게까지 지침이 되는 법령집을 편찬했다. 또 한 명은 앞서 살펴본 갈레노스다. 갈레노스의 백과사전 지식은 훗날 카톨릭에 참고자료로 사용되었다.


제 3장

이발사에서 외과의사까지

중세 초기 의학은 성 베네딕토의 뜻에 따라 주로 성직자가 맡았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수도사들은 몸이 아닌 정신을 구원하는 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피가 싫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1130년 클레르몽 공의회, 1131년 랭스 공의회, 특히 1163년 투르 공익회와 1215년 라트랑 공의회] 실제로 가톨릭교회는 의학 교육을 받은 종교인들의 외과수술 행위를 금지했다.
이후 당시 유일하게 칼날을 사용할 수 있던 이발사들이 외과수술을 맡았고, 이 시대의 유명한 수술도 전부 이들이 해냈다.
이처럼 의학과 외과수술은 오랫동안 분리되었다. 의학은 학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외과수술은
수 세기 동안 수많은 투쟁을 거친 뒤에야 이 외과의사들은 '수술하는 의사'인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제 4장 전염병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이 모여 살면서 전염병이 등장했다. 제대로 된 진단이나 효과적인 치료법도 없었으며, 전염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다(오랫동안 발진 전염병은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 '흑사병'이라 불렸다). 그 결과 수 세기 동안 전염병으로 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8세기 영국의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 19세기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파스퇴르, 그리고 독일의 미생물학자 로베르트 코흐의 등장으로 마침내 전염병을 고치는 효과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제 5장 혈액순환

르네상스시대는 무시무시한 종교재판을 비롯해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의문을 갖는 때였다. 가톨릭교회는 공식적으로 시체 해부와 갈레노스 이론에 대한 도전을 금기했다.
의사들은 이 두 가지 금기에 도전하며 투쟁했고 이 과정에서 마침내 중요한 발전을 이룩했다. 인체 구조를 명확히 밝혀낸 것이다.
인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심장의 역할과 혈액순관의 개념도 밝혀졌다. 이 모든 일은 종교 갈등과 인간의 비극, 학문 표절, 학문에 대한 열정과 투쟁 속에서 이루어졌다.


제 6장 의학 기구

의학은 어떤 학문보다 기구가 많이 필요한 분야다. 진단을 내리고 경도를 파악하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부분을 확인하며 치료하는 모든 과정에 의학 장비가 사용된다.
다양한 기구의 발명과 함께 의학 지식은 더욱 깊어졌다. 예를 들어 현미경 덕분에 맨눈으로 보지 못하는 세포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고, 청진기 덕분에 심장과 폐의 소리를 듣고 질병을 설명하고 분류하는 게 가능해졌다.
열정적인 실험가들이 우연한 발견을 계기로 새로운 기구를 속속 발명하면서 의학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제 7장 근대 의학

빛의 시대가 가고 혁명의 시대가 밝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프랑스에서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의사의 권위를 짓밟고 위협했다. 의학이 19세기 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의사들은 프랑스의 혁명 정부와 나폴레옹 제국 아래서 자신을 드러내며 계속해서 병원을 개편해나갔다. 근대 의학의 세 가지 혁명은 '마취' '백신' 그리고 '실험 의학'은 이 분야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제 8장 마취법의 발견

인간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바로 마취법의 발견이다.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 당시 의사들은 여전히 부상병을 마취 없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절단했으며, 환자들에게 입에 파이프를 물게 하고 절단한다는 말을 수 차례 반복했다. 어떤 환자는 끔찍한 고통과 정신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이프를 그대로 떨군 채 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이런 말을 반복할 필요가 없어졌다.
마취법이라는 이 위대한 발견은 한 치과의사의 주말 나들이에서 우연히 시작되었다. 의학의 역사에서 이루어지는 발견이 종종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빅토리아 여왕도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놀라운 진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제 9장 감염과의 전쟁

세균을 발견한 코흐와 멸균과 백신을 개발한 파스퇴르는 19세기 의학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 미생물학자들의 업적은 의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뛰어난 과학자들의 놀라운 발견은 모든 희생을 감수할 만큼 연구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광견병을 연구했던 루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작업대에 장전된 권총을 두고 실험을 계속해나갔다. 미친개에 물릴 경우 끔직한 고통을 덮치기 전에 서로 돕기 위해서였다. 의학의 역사에서 위대한 의사들이 발휘한 용기를 함께 살펴보자.



제 10장 실험 의학

19세기의 마지막 혁명은 프랑수아 마장디로부터 시작해 그의 제자 클로드 베르나르가 꽃피운 실험 의학이다. 실험 의학의 목표는 적합한 검사와 채혈 결과로 질병을 진단하는 것이었다. 이 위대한 선구자들은 의학을 단지 책으로 배우는 데 만족하지 않고 실험과 임상 연구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고자 했다.
실험 의학이 시작될 당시 의사들은 대부분 과학적인 방법을 무시하거나 경멸했다. 그러나 실험 의학이 등장하면서 근대 의학이 발전했으며, 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제 11장 소아 의학

오랫동안 아기는 의학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유아 사망률이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던 시절, 아기가 살아남는 것은 오직 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 몽테뉴는 "두세 명의 젖먹이 아기를 잃었다. 슬프지만 화가 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시대에 모든 일은 운명에 달려 있었다.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영향으로 18세기가 되어서야 생활환경이 조금씩 개선됐으며, 유아기와 아동기를 이해가 필요한 인생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의사도 비로소 이 작은 인간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아과'라는 단어는 1907년이 되어서야 프랑스의 대표 백과사전인 [라루스 사전]에 등재됐다.


제 12장 뇌 질환의 발견

이전 세대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는 정신을 뇌와 다른 비물질적인 존재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로부터 두 세기 후 르낭은 간이 담즙을 생산하는 것처럼 뇌가 생각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중적인 성격 탓에 뇌 질환 연구는 신경과학과 정신의학 사이에서 진행돼왔다. 신경과학은 합리적인 방법으로 육체의 이상 현상을 풀어내는 한편, 정신의학은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정신착란에 접근했다. 그러나 최신 정신의학에서는 정신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신체 기능 장애의 가능성 또한 고려하고 있다. 지식의 발달로 신경전달물질의 변화가 정신질환과 관련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래의 정신의학에서는 단지 호르몬과 뇌 활동의 이상 현상으로 모든 문제를 설명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 13장 안과학

눈은 신비로운 기관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시력을 잃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루이 9세는 십자군전쟁 이후 아랍 제국에서 본 것을 바탕으로 파리의 성 오노레 문 바깥쪽에 파리의 가난한 맹인 300명을 위한 캥즈뱅 병원을 설립했다. 이 병원이 문을 연 뒤 프랑스 왕실의 상징인 백합이 그려진 병원복을 입고 구걸하는 맹인이 등장했다. 이들을 보살피는 데 필요한 비용은 모두 나라에서 지급했으며, 왕의 사제에게 무료로 보살핌을 받은 대신 맹인들은 왕과 왕비의 평화를 위해 매일 기도할 의무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자비를 베풀었던 것이다.


제 14장 세포병리학과 유전학의 출발

세포가 생명체를 구성하는 매우 작은 기본 단위라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현미경 렌즈가 필요했다. 19세기에 접어들어 독일의 루돌프 피르호는 모든 세포가 또 다른 세포로부터 발생하며 질병은 세포의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나 '병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최고 권위자인 그도 생명체의 형질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피르호가 베를린 자선병원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동안, 베를린에서 멀지 않은 수도원에서 한 사제가 완두콩 재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사제의 발견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제 15장 출산과 피임, 그리고 성

성은 언제나 인간의 뜨거운 관심사였고, 출산은 여성의 큰 걱정거리였다. 반면 최근에는 세포생물학의 발달로 인한 불임치료가 커다란 관심사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윤리와 종교는 생식과 출산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의료기술이 발전한 지금까지도 이로 인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 열광하면서도 전통적인 가치를 잃을까 봐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의학의 발달은 중요한 도덕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 16장 대체기술의 등장

장기와 조직이식, 그리고 인공장치 삽입은 의학계의 큰 모험이었다. 이 허무맹랑한 꿈같은 일을 실현하기 위해 외과의사들이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마침내 20세기에 이식수술이 성공했다. 의족과 같은 인공보철부터 인공심장에 이르기까지 인공장치가 개발되면서 이제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인조인간을 만날 날도 머지않았다. 생체인공장기로 구성된 몸에 컴퓨터로 조작되는 뇌를 가진 인간의 출현은 더 이상 꿈같은 이야기 아니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다스 베이더는 바로 미래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제 17장 약초에서 알약까지

수도사의 정원에서 채취한 약초에서 현대식 알약까지 경구투여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모든 식물은 저마다 고유한 효능이 있고 모든 약은 저마다 세상에 등장하기 전까지 긴 이야기를 갖는다.
수 세기 동안 약초 시장은 유례없는 성공을 거둬왔고 이 성공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반면, 지난 두 세기 전부터 활성화된 제약산업의 생산품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현대 의약품은 왜 신뢰를 얻지 못했을까?
위대한 연구자와 매력적인 사기꾼이 섞여 있는 이 세계를 보다 분명하게 살펴보자.



제 18장 법의학

역사적으로 부검을 담당하는 의사는 형사 사건과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법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뇌의 형태 같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 범인을 대충 잡아들였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해부학자 프란츠 요제프 갈은 뇌의 각 영역이 욕구나 충동 등 서로 다른 감정을 처리한다는 이론을 창안했다. 그 후 의사들은 이 이론에 따라 선과 악을 행하는 영역을 빠르게 나누었다. 심지어 살인 충동을 일으키는 부위가 따로 있다고 믿었다.
이후 리옹대 법의학과 교수 알렉산더 라카사뉴와 그의 제자 에드몽 로카르는 과학적인 수사 방법의 기초를 세웠다. 현실 속 증거를 우선시하는 이 세계에서 코넌 도일이 만든 셜록 홈스라는 가상의 인물은 오랫동안 묘한 매력으로 사랑받고 있다.


제 19장 사회보장제도와 인간 중심 의료

인류가 탄생한 이래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인 병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삶을 뒤흔드는 전쟁이나 자연재해도 언제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류가 서로 연대한다면 역경을 좀 더 쉽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앞에 부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보장의 원칙에 도달하려면 자선이나 단순한 원조를 넘어서는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복지를 보장하고 국가는 부모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사회보장제도와 함께 인간 중심 의료의 대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기업과 국가가 사회 개선에 앞장서는 한편, 의사는 국경을 넘어 적절한 치료와 보편적 정의가 실현되도록 힘써야 한다.



제 20장 현대에 찾아온 재앙

중세부터 창궐한 전염병은 해결책이 마련된 반면, 전 세계 의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또 다른 재앙들이 현대에 등장했다. 이제 거침없는 여행자로 잘 알려진 페스트균과 콜레라균을 최악이라 보기는 어려워졌다. 부를 축적하거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넓은 세상으로 떠난 정복자들은 새로운 질병과 미지의 세균, 그리고 신비로운 기생충과 함께 돌아왔다.
앞서 소개한 코르테스인의 매독과 자모가 연구한 수면병에 이어 이 장에서는 라브랑이 발견한 말라리아와 피터 피옷이 맞서 싸운 에볼라 바이러스를 살펴볼 것이다.
20세기에 벌어진 전쟁은 의사들에게 또 다른 도전을 요구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안면 부상병에서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피복된 사람들까지, 새로운 치료법이 필요한 환자들이 의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21장 의학의 발전

발전은 계속될 것이다.

세상은 넓고 발견할 것도 많다. 의사는 계속해서 새로운 수수께끼를 던지는 환자와 대면하며 퍼즐을 만들고 또한 맞춰간다. 의사들이 끊임없이 백신과 항생제, 그리고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지만, 여전히 더 다양한 백신과 내성이 없는 항생제 그리고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수술법 개발이 필요하다.
의학은 좌절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진보해왔다. 한 세기 전부터 이루어진 급속한 의학의 발전 뒤에는 더 나은 치료법 개발에 앞장서는 동시에 자본에 혈안이 된 의학산업도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의학의 수수께끼는 인간의 삶을 위한 수수께끼이며, 이 수수께끼에 접근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함을 의미한다. 과학은 윤리가 아닌 현상만을 표현하기 때문에 사회윤리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복제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계속해도 될까? 유전병 치료를 위한 유전자 조작은 합당한가? 발달된 기술로 식물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앞으로 의학은 크게 변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미래의 발전을 상상할 수 있다. 원격진료와 나노기술, 로봇공학, 그리고 인공지능의 시대에 의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다가올 미래의 의학은 분명 지금보다 더 흥미로운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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