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공자의 열 제자에게 배우는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법
흔히 공자라고 하면 여러 나라를 주유한 그와 그 뒤를 따른 수 많은 제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가 읽는 [논어] 속 공자의 한 마디 한 마디도 제자들이 기록한 내용이다. 그 중 많은 자료가 몇몇 제자와 공자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한 제자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도 공자의 사상을 알 수 있다.
공자의 핵심 학설 '일이관지'는 중심사상 하나로 유가의 전체 체계를 세우는 것을 만ㄹ한다. 이런 스승의 지혜에 가장 뛰어난 제자 안회조차 "우러러볼수록 높아지고, 뚫으려 할수록 단단해지는구나"라고 감탄했을 정도니 2500여 년 뒤 현대인이야 어떻겠는가.
공자는 긴 세월 동안 수 많은 제자를 가르쳤으면서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탄했다. 하물며 우리처럼 평범한 후대 사람들이 공자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자를 배우려면 평생을 두고 천천히 심혈을 기울여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를 배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다. 공자가 많은 제자를 가르친 만큼 그들은 각각 성격도 다를뿐더러 자질이 뛰어나거나 부족한 이도 있고, 깨달음이 깊거나 얕은 이도 있으며, 포부가 크거나 작은 이도 있고, 실천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이도 있다. 우리는 그들이 주는 폭넓은 배움의 스펙트럼에서 자신과 닮은 부분을 찾아 공자에게 가르침을 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인생의 각 단계에서 서로 다른 제자를 통해 다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어릴 때는 자로의 호기와 솔직함이 좋고, 공부할 때는 영리한 자하와 자유가 부러우며, 사람들과 사귈 때는 재아와 자공의 뛰어난 말솜씨가 부럽다. 취직해서는 염옹과 염유의 정치 경력을 참고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끊임없이 앞서 나가고자 한 증삼과 과감하게 질문할 줄 아는 자장을 본받으면 된다. 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 안회는 평생의 모범으로 삼을 수 있다.
스승으로서 공자는 제자를 가려서 거두지 않았으며, 각자 재능에 맞춘 가르침을 전했다. 그런 만큼 그에게 배우고자 하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바람도 저버릴 리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공자의 열 제자가 공부한 방법을 본받아 몸과 마음을 수련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 전국시대 중기를 산 맹자의 소망은 공자를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는 것이었으나, 훨씬 늦게 태어나서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맹자는 공자를 마음속 스승을 삼고 배움에 정진했다. 그 결과 맹자는 선인과 후대를 잇는 다리로서 성현들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후세 사람들에게 아성이라고 추앙받았다. 그런 맹자도 자신의 책에서 공자가 아낀 제자들의 언행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다시 말해 맹자도 이 제자들을 통해 공자의 핵심 사상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산둥위성tv의 요청으로 (신행단)이란 프로그램에서 '공자의 열 제자에게 배우는 지혜'를 주제로 앞서 말한 공자의 열 제자를 소개했다. 이 책에서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안회의 즐거움, 자로의 솔직함, 자하의 가르침, 증삼의 부지런함, 염유의 바른 관리 노릇, 염옹의 덕행, 자공의 언변, 자유의 도량, 재아의 변론, 자장의 뜻 세우기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자의 열 제자를 알고 그들을 내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이란 표지판이 없는 낯선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고통과 좌절이 찾아올 때도 있고 타인의 시선과 시류에 흔들려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넘어질 때도 있다. 이럴 때 나보다 앞서 살았던 누군가가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여러 가지 조언을 들려준다면, 더군다나 그 조언자가 2,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의 삶을 변화시킨 위대한 스승과 그의 제자들이라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제자들이 겪은 다양한 고민을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고민과 별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에 타협하기 보다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우리도 그들처럼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배운다면 비록 그 걸음은 느릴지라도 끝까지 걸어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진정한 즐거움은 자기 삶을 누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유가 사상을 널리 알리는 일에 힘쓰며 '공자를 스승으로, 공자를 벗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의 제자를 소재로 공자를 깊이 배우려고 시도한 이 책이 부디 [논어]와 공자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바란다.
'극기복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하도록 바꿔라.
인생이 즐거우면 가난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가난은 삶의 특정한 상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가난해졌을 때 자신에게 '이대로 살 수 있을까?' 물어보라. 아무 거리낌 없이 그대로 살 수 있다면 삶의 즐거움은 절로 찾아온다. 그러니 공자가 안회의 삶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며 "현명하구나, 회야 ! "라고 두번이나 말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안회는 마음속에 즐거움의 근원이 있기에 가난한 삶을 기꺼이 실천 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안회처럼 실천할 수 있지만, 그에 앞서 즐거움의 이치부터 깨달아야 한다.
[시]는 문학을, [서]는 역사를, [예]는 사회규범을, [악]은 예술적 수양을, [역]은 철학을 담고 있다. '시.서.예.악.역'
P. 39
진정한 즐거움은 자기 삶을 누리는 데 있다.
앞선 글을 통해 알 수 있듯, 안회가 공자에게 확실히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되새겨볼 만하다. 덕분에 2000여 년 뒤 우리는 안회와 관련된 이야기만 읽어도 그의 즐거움을 떠올릴 수 있다. 가난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안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돈이 많은 사람은 즐겁기만 할까? 물론 돈이 있다고 반드시 즐겁지 않다는 뜻은 아니며, 돈이 있으면서 즐거울 수도 있다. '부이호례', 즉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면 즐거울 수 있다. 그러려면 자기 돈만 믿고 남을 무시하거나 지나친 돈벌이에 혈안이 되지 말고, 예의와 법칙을 지키며 더 많은 선을 행해야 한다. 우리가 부자에게 가장 부러운 점은 그 돈으로 더 많은 선을 행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다. 돈이 있어서 좋은 차를 타고 큰 집에 살며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켤코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외적인 삶의 즐거움은 쉽게 싫증 나기 때문이다.
몸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일에 집중하면 금세 피로감이 쌓이고 감각 기관의 자극이 줄어든다. 진정으로 즐거우려면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오래전 한 신문에서 미국의 부호 빌 게이츠가 세 살 난 딸을 안고 있는 사진을 봤다. 그 사진 옆에는 '나는 딸을 안고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적혔다. 빌 게이츠의 사진을 빌려 설명하면 돈은 '반드시 있어야 할' 조건이지만, 돈이 많고 적음은 상대적이다. 당신이 아무리 가난해도 살아갈 수 있는 정도라면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지' '정' '의' 다.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고 배려하는 '감정', 즉 '정'이 있으면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정'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지'와 '의'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필요한 것보다 상위에 있는 개념이 '중요한 것'인데, 인생의 의의와 목적을 이해하는 일이 진정으로 중요하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여기서 '의의'는 내 삶의 의미를 가리키며, 내가 알아야 할 일이다.
또 '목적'이란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뜻이다. '무엇을 위해'와 '무엇 때문에'는 그 의미가 매우 다르다. 특히 '무엇을 위해'는 삶의 목적이나 목표를 위해 자기희생이 가능한지 묻는 거이다. 이를테면 무엇을 위한 삶은 살신성인이나 사생취의 같은 덕목이 목적이 된다. 듣기만 해도 두려운 일을 어째서 내가 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목표를 위한 인생은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들이 나의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삶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유가 사상을 익히려면 결국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과 '필요한 것' '중요한 것'을 모두 섭렵해야 한다. 인생이 추구하는 즐거움의 가장 높은 단계인 '중요한 것'은 유가 사상의 선을 향하고, 선을 택하며, 선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의미다. 그렇다면 선이란 무엇일까. 선은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적당한 관계를 실현하는 것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를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해 그 관심이 세상 사람들에게 확대되어야 한다.
유가 사상을 배우면 그 삶에 뿌리가 생겨 실천이 타인에게 미치며, 개인의 자아실현과 사회의 발전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자신의 능력을 키우려고 꾸준히 노력하면 사회도 조금씩 나아진다. 그러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안회를 소개하는 것은 당신이 가난한든 부유하든 모자라든 뛰어나든 즐거움은 자신에게 달렸으며,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안회는 워낙 본받을 점이 많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즐거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안회는 다양한 즐거움 중에서도 배움과 덕행을 조화시켜 포부를 키우고, '군자'라는 목표를 향해 나가는 즐거움을 잊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공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으며, 맹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유가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자로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죽음을 대하는 유가의 사상에 대해 말해보자.
첫째, 죽음은 생명의 자연스러운 종결로 삶이 있으면 늙음이나 병, 죽음도 있을 뿐 특별한 감정적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둘째. 죽음이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일종의 목적을 나타내며 죽음에 앞서 삶을 온전히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신성인'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뒷날 맹자가 '사생취의'란 말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통 사람에게 죽음이란 희생이자 포기이며 손실에 불과하지만, 유가에서 죽음은 삶의 마지막 검증이라 할 수 있다. 이 검증을 통해 당신이 일생 동안 가치 있게 살았는지, 목적에 도달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죽음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모두 이해했다면 당신의 인생은 매우 안정적이다. 죽음의 이치를 깨달았다면 세상에 걱정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은 지금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바르게 살면 된다. 이상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자로가 제기한 문제는 표면적인 의미로 볼 것이 아니라 그 폭을 넓혀 공자의 사상이 널리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P.72
돌을 다듬어 빛나는 금을 만들다.
자로의 여러 가지 면모를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았다. 그는 마음이 곧고 덕행이 높은 군자며, 기질이 호방한 사내대장부고, 자기가 한 말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며, 바라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다른 이의 소송 안건을 진득하게 들어주지 못하지만, 몇마디만 듣고도 옳은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인물이다. 그는 스승이 함께 다른 나라로 가자는 푸념만 해도 신이 나 배를 찾아 나서는 행동파다. 이런 모습은 자로의 솔직한 개성일 잘 드러난 예다.
물론 자로가 음악이나 예술, 문학 등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했다면 훨씬 완벽한 사람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은 구구나 타고난 성향이 있으며, 후천적인 재주를 각자 오랫동안 단련할 뿐이다.
이 장에서 처음 언급한 이야기를 다시 해보면 자로는 공자의 제자가 된 뒤 남산의 대나무처럼 앞에는 날카로운 화살촉을, 뒤에는 깃털을 달았다. 자로가 완벽히 새로운 사람이 된 원동력은 공자의 제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용감한 싸움꾼이나 의협심 강한 젊은이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뒤에도 싸움이나 하며 지낼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공자의 맞춤 교육은 확실히 돌을 금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점석성금' 효과는 자로에게서 가장 뚜렷이 드러났다.
우리는 자로를 보며 그의 솔직함과 용기, 도의를 배울 수 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무엇이 '의'인지 가려내고자 했다. 물론 자로는 공자에게 여러 가지면에서 지적이나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 역시 우리가 배울 가치가 있다. 자로는 공자의 수 많은 제자 가운데 개성이 가장 분명하고 표현이 특출한 인물이다.
사람은 왜 사는 동안 끊이없이 자신을 단속해야 할까? 자신을 단속해야 감정적인 면을 포함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적당한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진실해야 하지만 지나쳐서도 안 된다. 세상에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기에는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힘, 정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P.97
마음을 넓혀 공부한다
자하는 배움을 좋아했기에 훌륭한 제자이자 스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자의 제자로서 더 크게 발전하려면 일반적인 생활 규범만 배우기보다 높은 이상을 품어야 했다. 모름지기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고상한 뜻을 세워 포부가 더 높은 곳으로 향하도록 본받고 배워야 한다. 마음을 크게 하지 않고 어떻게 만물을 이해하겠는가. 그래서 송나라의 학자 주희도 공부할 때는 마음을 넓혀야 천하 만물과 나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중용]
"남이 한 번에 할 수 있다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일 열 번에 할 수 있다면 나는 천 번을 하겠다. 정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도 똑똑해지며 연약한 사람도 강해질 것이다."
- 남들이 한 번 읽을 때 나는 백 번 읽고, 남들이 열 번 읽을 때 나는 천 번 읽겠다는 각오로 노력하면 아무리 모자란 사람도 결국 전부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인을 계승하고 후대를 가르친다
우리는 무엇보다 증삼의 부지런한 노력을 배워야 한다. 어린 시절 그는 결코 똑똑하지 않았으며, 공자에게 우둔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노력한 끝에 유가 사상을 전파하는 중요한 인물이 되어 [대학]을 정리하고 [효경]을 집필했다. 이를 통해 그는 공자의 사상이 자사와 맹자에게 이어지도록 했다. 그가 있었기에 유가도 더욱 폭넓게 발전할 수 있었다.
유가 사상은 선을 행할 때 다른 보답이나 칭찬을 바라지 않으며, 순수하게 내면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선을 행해야 할까?
첫째, 사회규범을 지키기 위함이다. 사회는 당신이 선을 행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에 동참하길 바란다. 그러나 사회규범이 무너질 경우 실천에 대한 구속력이 사라질 수 있다.
둘째. 종교를 믿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든 내부적 계율로 당신을 구속할 수 있고, 종교의 계율은 당신에게 일반적인 법률보다 훨씬 엄격한 선의 실천을 요구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종교를 믿을 수는 없다.
셋째, 자신의 양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유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양지를 개발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가르친다. 이를 통해 선행이 자신을 위한 일임을 깨닫고, 인격의 존엄이 확립되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의 원칙을 세우고 지켜야 한다
지금까지 염유의 행동거지를 들어 유가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염유는 공자처럼 다재다능한 인물이지만, 내성적이고 나약해서 윗사람인 계강자가 잘못할 때 바른 충고를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공자는 염유를 거세게 비난했다. 오늘날 우리는 유가의 올바른 선택을 어떻게 고집할 수 있을까? 이때 필요한 것이 교육인데, 진정한 교육이란 자신을 가르치는 일이다. 현대 사회는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서 당신이 원하면 쉽게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앞서 염유를 소개할 때 도덕의 실천과 주체의 확립, 인격의 존엄에 대해서 폭넓게 이야기했다. 이를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 사회에서 어떤 동료나 상사, 지도자를 만나도 자신의 원칙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관리가 되는 방법
첫째. '선유사'는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길 때 솔선수범하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유사'는 각급 관원을 가리킨다. 윗사람이 나서서 모범을 보이면 아랫사람도 자연스럽게 그를 따른다. 반대로 남에게 시키기만 하고 자신은 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고생은 우리가 하고 공은 윗사람이 챙긴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사소과'는 아랫사람의 사소한 잘못을 따지지 말라는 뜻이다. 아랫사람이 작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자나 깨나 마음에 두는 사람은 평생 희망이 없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누군가 잘못을 하면 만회할 기회를 줘야 한다. 무엇보다 실수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런 사람은 겸손히 자신을 낮출 줄 알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기에 높은 자리에 오르면 사람들을 위해 더 열심히 봉사하려는 바람을 품는다.
덕을 수양하고 인을 행하라
중궁에 대한 결론은 순자의 말로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순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조금 복잡한 부분이 있다. 그는 공자의 사상을 전수했다고 생각했으나, 일반적으로 맹자를 공자의 정통 후계자로 보는 편이다. 맹자는 공자의 '인'에 통달했고, 순자는 공자의 '예'에 통달 했기 때문이다. '인'은 공자 사상의 근본인 반면, '예'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규범으로 공자의 사상에서 부차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순자 역시 학문이 뛰어나고, 특히 중궁을 높이 평가했다. "성인으로서 순임금과 우임금은 권세를 얻었으나, 공자와 중궁은 권세를 얻지 못했다." 순자는 중궁을 공자와 같은 위치에 놓고 칭찬했는데,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순자는 중궁이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본 거이다. 현재 중궁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지만, 당시 순자는 훨씬 많은 자료를 통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확인한 것이 분명하다.
이 장에서는 덕행과의 우등생 중궁에 대해 이야기하며 민자건과 염백우도 소개했다. 중궁은 정치 분야에 몸담았지만, 이는 그가 행한 덕행의 일종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중궁에게 덕행을 수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뛰어난 말재주로 스승의 이름을 높이다
[논어]를 보면 공자가 자공에게 특별히 마음을 쓴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우리 모두 되새겨볼 만한 부분이다. 공자의 제자를 단순히 우리가 배울 만한 본보기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공자의 사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공자는 우리의 스승이며, 제자들은 그의 가름침을 받아 젊은 시절부터 천천히 성장해온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자공은 영원히 스승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공자는 이를 바라지 않았으며, 오히려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와 같은 수준에 이르기를 희망했다. 공자 본인도 인정했지만 세상에 지식을 타고나는 사람은 없으며,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지식의 체계를 관통할 수 있다.
이 장에서 우리는 자공의 말솜씨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었다. 뒷날 그의 모습을 살펴보면 관리로서 공자의 요구에 부합했으며, 스승에 대한 충심도 대단했다. 제자로서 스승을 모신다고 맹목적으로 충성하거나, 무슨 패거리를 만들듯이 떠받드는 것은 유가의 뜻이 아니다. 스승을 제대로 모시려면 그의 사상이 어떤 점에서 훌륭한지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공은 언어 분야에서 매우 빠른 반응을 보였으며, 총명하고 말솜씨가 뛰어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때문에 자공은 관리로서, 외교 분야 책임자로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다. 사마천의 말처럼 공자가 뒷날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데는 자공의 공이 적지 않다.
[맹자]<공손추 상>에 보면 맹자는 자공의 말을 빌려 공자를 칭송한다. "인류가 생긴 이래 공자를 넘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 말은 [맹자]에 기록되었으나 사실 자공이 한 말로, 공자에 대한 그의 그리움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자유는 도량이 넓은 인물이다. 겉모습에 얽매이지 않고 담대멸명이란 인재를 알아본 안목, 평범한 백성에게 [시경]을 가르친 깊은 속내, 한탄하던 스승이 기꺼이 자신의 이상인 대동 사회에 대해 설명하게 한 진지한 태도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자유가 묻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때는 대도가 행해져 천하가 모든 사람의 것이었다"는 명언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말을 당장 실현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목표로 삼아 조금씩 그런 방향으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상을 금세 현실로 만들 수는 없지만, 이상이 없는 현실은 고인 물과 같아 나갈 방향을 잃고 흐르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는 동안 향상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사회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자유의 넓은 도량을 통해 알 수 있듯, 유가의 사상이 발전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우리는 이를 함께 연구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자신을 수련하여 꾸준히 성장한다
[맹자]<공손추 상>에 보면 재아가 공자를 칭송한 모습이 나온다. "내가 관찰하건대 스승님은 요임금, 순임금보다 훨씬 뛰어나다."
이는 과장일까,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이야기일까? 나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순시대는 매우 작은 사회로, 요순 이후 하나라가 세워졌으나 여전히 낙후된 상태였다. 따라서 요순시대에는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공자가 마주한 현실은 예악이 붕괴된 복잡한 시대로, 그는 주나라의 문화를 되살리고 천하를 다시 안정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그러므로 공자가 요순보다 뛰어나다는 재아의 말은 그럴듯한 개인적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자를 맹목적으로 숭배해서는 안 된다. 공자 역시 평범한 사람으로 천천히 성장했을 뿐, 그가 한 일은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진실하게 자신을 수련하고 각 방면에서 시대와 발맞춰 나가다 보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 재아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논어]에 등장할 때마다 공자에게 혼나기 바쁜 것 같지만,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지 않았던가.
지혜의 성장에는 한계가 없다
자장은 공자가 말년에 거둔 제자로,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스승 곁에서 다양한 가르침을 구했다. 하지만 공자는 자장에게 거만하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타일렀다. 실제로 공자가 말한 '과유불급'에서 지나치다는 의미의 '과'가 자장을, 부족하다는 의미의 '불급'이 자하를 가리킨다. 자장은 언행이 급진적이고, 자하는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자장은 스스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상이 매우 높고 질문도 수준이 있어 공자가 자세히 생각해본 뒤에야 답해줄 수 있었다. 그의 질문은 우리에게 어려서부터 뜻을 정하고 원대한 포부를 품어 노력하며 나가라는 자극제가 된다.
공자는 정치에 대해 묻는 자장에게 "관직에 있다고 태만하지 말고 정무를 집행하는 데 충성을 다하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뜻을 세우는 데도 보탬이 될 만한 명언이다. 이는 [역경]에 나오는 "하늘의 운행은 굳건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강해지도록 쉼 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괘사인 건괘와, "땅의 기세는 두텁고 온순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두터운 미덕으로 만물을 담아내야 한다"는 괘사인 곤괘와 흡사한 의미다. 날마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우리의 지혜도 천천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지혜의 성장에는 한계가 없음을 기억하라.
우리는 자장에게서 뜻을 세우는 일에 대해 배웠다. 그는 공자에게 다양한 가르침을 구했으며, 우리는 이를 통해 사람의 성품과 인생 계획, 삶의 발전 방향까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자장을 본받아 서로 격려하면 함께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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